라오스 여행 이야기 (경제관련)

여행 2019. 5. 26. 17:13

https://youtu.be/6che1LjJ5Q8

 

 

 

지난주 라오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라오스 이야기를 할까하는데 이야기 앞서 다녀 올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후원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기회를 주신 보답으로 이야기를 남겨야 하는데 매번 다녀올때마다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언어적 한계, 일정상 한계, 경제적 한계 등으로 3일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죠.

그져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통편을 통해 창가로 펼쳐지는 모습들을 보고 오로지 생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팩트체크니 하는 사실적 문화가 깊다보니 생각이라는 것은 사실을 떠나 허구적 성격이다보니 머리속은 백지장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오스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얼마나 벌며 수출 상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요즘은 유투버나 또는 블로그 등을 통해서 충분이 알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고 설령 그것이 중요하더라도 장롱의 역량으로는 알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는 점을 먼저 헤아려 주시고 그져 개인의 감상문 정도로서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장롱은 2013년 부터 매년 1회 또는 2회에 한하여 아시아권을 다녔습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대만, 중국 등.. 이들 국가는 60만원 가량이면 최소적인 의식주와 교통의 활용 정도는 가능하죠.

해당 국가를 접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동차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볼 수 있고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라오스도 여느때와 다름 없이 그런 일정과 일상이었습니다.

 

장롱은 도로에 펼쳐진 풍경들을 보면서 3일내내 머리속에 떠올랐던 것은 바로 베트남이었습니다.

2013년부터 약 2년간에 걸쳐서 베트남 하노이, 다낭, 호치민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대국이 될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같은 돈으로 보다 더 많은 나라를 가야하지만 기회를 포기하고 베트남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라오스를 보면서 베트남을 생각한 것은 일단 도로의 풍격이 2013년의 베트남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장롱이 처음 베트남을 본 풍경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국의 60년대 모습이라고 표현들을 하는데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실감은 못하지만 한국도 정말 오지에는 인프라마져도 형성되지 않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대략 감이 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나라의 수도라는 대 도시가 우리의 시골 읍내 수준에 가깝다고 한다면 충분히 모습이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장롱은 처음 베트남에 가기전 공산주의 국가라는 생각을 머리 가득히 넣어 두고 갔습니다.

또래 세대들은 알겠지만 초등학교까지 독재정권 체제였고 그 체제에서 매년 6.25가 되면 " 공산당은 싫어요" 라며 글짓기, 포스터, 웅변 등 과제물을 내고 사상교육을 받았던지라 가지고 있던 인식이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공산주의는 노력 여하 없이 다같이 나눠같고 욕심없는 사상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죠.

물론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도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다름이 있어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이를 모르는 대부분은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짧은 생각에 먼저 접했던 베트남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라하는 대한민국과 너무도 흡사함을 넘어 더 치열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같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한량처럼 세월아 하며 노는 사람도 있었죠.

그렇지만 적어도 공산주의라는 틀에 박힌 생각의 틀에서는 충격임은 분명했습니다.

물론 라오스라는 나라에서는 그정도의 풍경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차이점이라 함은 십수년전의 못살던 베트남의 풍경과 같을 모습을 보았고 치열한 움직임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개인은 있었겠지만 적어도 국가 전체적으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롱이 라오스행을 선택한 것은 2013년 베트남을 여러차례 다녀오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수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고 실제 그런 결과가 있었지만 미중간의 무역전쟁 더 나아가 그 칼날이 한국으로 향할수 있다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베트남이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이를 위해서 라오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라오스를 경험하기 위해서였죠.

베트남은 지리상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등 2억이 넘는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좀더 가면 중국, 인도 등 무한한 발전이 가능한 구조이죠.

그런데 베트남의 교역현황을 보면 일본, 한국, 중국, 미국, 유럽에 한정되는 교역권을 가지고 있고 주변에 대한 교역은 상당히 낮은 비중입니다.

물론 베트남의 경제발전의 시작이 한국과 같은 외국계 기업들이 선진국을 상대로한 생산거점 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교역구조가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지난 십수년간 그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구가 많고 경제권을 형성한 태국과의 교역이 한계적이라면 그 중심에는 라오스의 지리적 특성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라오스가 적어도 2013년에 보았던 베트남이었다면 베트남은 더 큰 성장국가로 갈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장롱이 못보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장롱은 베트남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베트남이 한국의 수출대국이 될수 있다고 이야기 했던 것일까요?

 

장롱은 올해로 40살이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유년기 및 청년기였던 90년대 이전에는 " 아나바다 운동"이니 인생의 주 목적이 의식주만 해결되면이라는 것이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후로 하여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가 경제의 모터가 되면서 경제대국이 된 나라이고 이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머리에 염색을 한다던지 연예인을 직업으로 떳떳하게 이야기 할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이후에는 누구나 당당히 멋을 위해 염색을 하기도 하고 연예인이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2013년에 베트남에 갔을때는 한류열풍이 막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하얀 피부를 위해 그 더운 날에 온몸에 천을 두르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급 휴대폰을 가지기 위해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리는 관경들을 광범위하게 보았고 여기저기서 개발 붐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이 공산주의지 사람의 욕구와 탐욕은 그 어떠한 정치사상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런 모멘텀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판단기준이기도 했습니다.

라오스도 어디에선가는 그런 모습이 있었겠죠.

다만 짧은 일정에 이를 보지 못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주변의 인프라 구조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보면 그정도의 열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라오스는 일정 시차를 지나 한번더 가봐야 판단이 설것 같습니다.

 

라오스를 다녀온지 일주일여 시간이 흐른뒤에도 막막함이 가라않지 않고 있습니다.

라오스를 가는 내내 답답함이 있었죠.

야시장을 구경하는데 어린 아이를 엎고 동냥을 하는 여성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노숙자니 하며 다를바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게으름의 가난과 국가의 무능함의 게으름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가난해야 했는가는 바로 철학과 사상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과 부자의 차이는 바로 생각 한끝차이로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죠.

가난한 부모가 가난한 자식을 만든다는 것이 장롱의 생각입니다.

의사 부모가 의사 자녀를 둘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장롱은 어릴때부터 성실하게 살아야하고 열심히 저축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지만 이는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긴 하지만 이것 하나가 인생의 전부가 되면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나쁜짓을 해서 돈을 벌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은 철학과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지난 경제 발전은 노동집약과 기술집약적의 결합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체제는 성실하나로도 얼마든지 이룰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무한경쟁 사회에서 중국의 추격 훗날에는 베트남의 추격으로 인해 노동집약은 한계에 직면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십수년간 노동자들의 임금을 깍는데 바뻣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 노력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장롱은 지난 2015년 중국에 다녀오면서 대한민국은 상당수의 산업을 중국에 뒤집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을 한바 있고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세상은 자동화 및 로봇 등의 과학발전이 노동집약적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고 자본과 지식집약적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밑바닥에서 변화는 있긴하지만 적어도 국가의 이념은 여전이 쌍팔년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장롱의 어릴쩍 꿈은 철학가였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한글을 대부분 6살에 때는데 장롱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땟죠.

그것도 독학으로...

유년기 시절 한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만화책을 들고 다녔고 그 책들은 대부분 사상에 관련된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어르신들은 책을 뺏었고 들고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책들은 한량이나 읽는 책이라며 절대로 봐서는 안된다 하였죠.

그져 열심히 노동을 하고 저축을 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 어른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반때는 직업군 또는 대학진학의 진로는 기술이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자동차, 기계 등이었죠.

그렇게 많은 또래 친구들이 어리신들의 가르침에 전공을 택했지만 외환위기가 닥치고 난뒤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유투버라던가 블로거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수천만원 또는 수십억대의 연봉을 기록할 만큼 우리는 이미 지식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죠.

어른들은 항상 " 내가 너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그래서 더 많이 알아" 라며 어른들의 말을 강요를 합니다.

그리고 보면 결국 콩나물 장사였던 것이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찌보면 어른들의 현재 진행형에 사로 잡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은 아닌가 하고 혹시 우리의 미래 자화상이 라오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답답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지적재산권이니 기술이니 MSCI이니 하는 것들이 사실상 지식과 자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생산은 사람이 한다고 믿고 있는듯 합니다.

물론 여전이 사람이 생산을 하지만 로봇이 있던 시대와 없던 시대의 생산 개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즉 지금도 사람이 생산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1세대적 생산개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와 같이 우리는 가까운 시대에 로봇지수 사회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장롱이 말한 생산을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4차산업을 현실로 믿고 있음에도 아직도 우리는 90년대 이전의 사상과 같이 사람이 생산을 한다는 개념으로 살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로서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는 내용이라서 동영상을 통해 한번더 언급하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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